집단성 권위주의 증후군

 

밥 짓는 목사

 

지난 해 몇 분의 목사님 가정과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참여한 후배목사님 중의 한분이 때마다 손수 헌신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어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목사님은 우리가 2박 3일 머무는 동안 열 명도 넘는 식객의 모든 음식을 혼자 다 만들어 공급하였다. 식사 후엔 설거지까지 해야 완벽하다고 많은 그릇을 혼자 모두 설거지 하였다. 위생적이어야 된다고 모든 그릇을 윤이 나도록 잘 닦아 깨끗이 정리해 건조대에 올려놓은 모습을 보고 모두들 감탄하였다. 물론 사모님들도 함께 있었지만, 밖에 나와선 사모들이 쉬어야 된다고 사모들은 아무 일도 못하게 하고 모든 부엌일을 자기 혼자서 다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밖에 나와서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집에서도 부인이 부엌에 들어갈 일 없이 혼자 요리부터 설거지까지 모두 한다는 거다. 이유는 사모가 몸이 좀 불편하여 언제 부터인가 아예 부엌일을 자기가 도맡아 한다고! 부인이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부인을 아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듣고 많은 찔림을 받았다. 집사람 옆에서 한 번도 설거지나 밥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후 나도 비록 혼자 있을 때뿐이지만, 음식 만드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편이다. 여차하면 나도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준비한 자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후배 두 가정이 7명이나 되는 가족을 데리고 나를 방문하였다. 그동안 연마한 요리솜씨로 된장찌개를 끓여 점심을 직접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나름대로 실력을 발휘 하였다. 인사치례이겠지만 모두가 맛있다며 한 냄비를 모두 비웠다. 실력보다 정성이 더 맛을 낸 것 같다. 칭찬을 듣는 것보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더 흐뭇하였다. 이 맛에 가정주부가 사는가 보다.

 

내가 직접 밥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서 후배를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를 아끼는 믿음직스런 평신도 선교동역자가 나에게 충고를 해준다. 그런 식으로 후배를 대하면 선배로서의 체면이 떨어지고, 목사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니 앞으론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럴듯한 생각이 든다. 방문객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있고, 처음 만나게 된 후배목사와 사모도 있었는데 그들이 나를 얼마나 채신머리없고 좀생원처럼 보았을까! 후배를 잘 대접해 주고 싶은 일념뿐이었지 나의 행동이 그렇게 위신 깎을 일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권위주의 증후군들

 

몇 해 전 개척교회를 다시 시작한 후배목사가 교인이 없어 실의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부인이 직장에 다녀 간신히 생활은 유지해 나가는 모양이다. 착하고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라 큰 교회를 맡아도 잘 해낼 인품인데 개척교회를 하며 고생이 많은가보다. 격려한다는 차원에서 한마디 하였다. 부인이 직장에 다니느라 고생하는데 가만히 있지 말고 부인대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밥도 하여 부인이 퇴근하고 오면 고생하였다고 격려하며 밥도 좀 차려 주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그렇게 해 보기도 했지만, 그랬더니 영성이 떨어져 안 되겠더라!”고 말한다. 물론 기도하고 말씀보고 전도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 종일 직장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부인을 위해 집에 있던 남편이 조금이나마 배려(配慮)하는 일을, 영성이 떨어진다고 안한다는 그 친구의 생각이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영성을 강조하는 친구가 개척한지 꽤 오래 되어도 교인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보다 10년 이상 나이어린 그가 나보다 더 구세대를 사는 느낌이다. 아마 그 친구도 권위 있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앞서 말한 후배하고는 목회관이 전혀 다른 모습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목사님이 금번에 은퇴를 하시며 약 10억에 가까운 은퇴비를 교회로부터 받기로 했다는데 그것으로 부족하여 품위 유지비로 매월 300여만 원씩의 연금을 더 요구하였다는 소문이 정보에 귀가 어두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참으로 대단한 품위 유지비다. 그 금액을 현금으로 가지게 된다면 대도시 생활에서도 상당히 큰 액수이다. 그분이 목회하신 중소도시의 조그만 지방에선 월 50만원도 채 받지 못하여 가난에 허덕이는 목회자가 50% 이상이나 되는데, 어떻게 그런 가련한 후배 목사들은 생각지 못하고 감히 그런 요구를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또한 서울에서 큰 교회를 이루고 지금은 은퇴하신 어떤 목사님은 평신도들 앞에서 권위가 떨어질까 봐 평생 넥타이를 풀지 않았다는 분도 있다. 새벽예배 시간에는 물론이고 교인들과 수련회를 가서 운동을 할 때도 넥타이를 풀지 않았다고! 평신도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신 줄로 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생각할 때, 서로 잘 알고 믿는 이들로서 모두가 가족처럼 자별한 사이일진대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 앞에서 꼭 그렇게 밤낮으로 넥타이를 맬 필요가 있을까! 그분의 행위도 잘 이해가 잘 안 된다.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이렇게 권위가 떨어질까 염려하고, 영성이 떨어질까 염려하고, 품위가 떨어질까 염려하는데 나에게선 그런 권위의식이란 걸 찾아 볼 수 없으니 계속 이러다간 집단성 권위주의 심프톰(symptom)에 사로잡힌 분들의 목회사회에서 권위 없는 목사라고 따돌림이나 당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십자가와 부활

 

부활주일 아침부터 부활을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온다. 나는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성의를 보내주는 분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이번에도 사순절과 부활절을 보내며,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죽음과 부활에 관한 묵상과 고민과 결단을 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 매년 있는 행사 치르듯이 그저 형식적인 절기를 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왜 주님이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었으며,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자세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여러모로 부족한자라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주님이 사신 모습대로 살아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게 된 동기도 실은 집단성 권위주의 증후군에 빠진 대제사장의 무리와 그의 추종자들 때문이었다. 당시 아무런 종교적 지위나 권한도 없는 예수가 안식일도 지키지 않으며 비렁뱅이들과 다니며 자기들의 권위를 손상하는 일을 그들은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율법과 권위에 도전하는 예수를 빨리 제거하려고 하였다. 하여 로마 정부당국에 고발하길 예수가 식민정부에 대항하여 민중을 선동하며 다닌다고 밀고하여 예수를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지 않았는가!

 

소금을 반찬으로

 

로이다 사모는 우리 선교 팀이 그녀의 집에 거하고 부턴, 쌀은 씻어 앉혀놓되 반찬은 전혀 할 생각을 않는다. 하루는 그런 모습에 화가 난 우리 팀원의 여자분 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젊은 사모가 괘씸하다는 둥, 건방지다는 둥, 그럴 수가 있느냐는 둥 ---. 우리가 반찬을 해 놓으면 먹기는 잘 먹으며 전혀 찬을 만들려 하지 않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태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민도로 섬 산속 부족마을 망얀족 출신이고, 산속에 살면서 반찬이란 것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었다. 특히나 한국의 식단처럼 많은 반찬은 상상도 못해본 사람이었다. 뿌리 고구마가 주식이라 그것이나 캐어 삶아 먹든가, 바나나 파파야 등을 곁들여 먹으면 최고의 식사였다. 가끔 쌀이 생겨 밥을 먹게 될 경우엔 소금을 뿌려 먹는 게 최고의 반찬이었다. 그녀는 마음이 나빠서 요리를 안한 것이 아니고, 아예 요리 자체를 모르고 큰 분이었다. 남편이 한국인 인지라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에 의하여 한국요리를 좀 배워서 아는 것도 있지만, 능숙한 한국 여자들의 요리 솜씨를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으랴! 그래서 그녀는 혹시 실수 할까봐 한국에서 온 분들이 요리를 할 때는 뒤로 비켜나 있었던 거였다. 그녀가 도시의 여인들이 입는 옷을 입고 비록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말할 줄 안다고 도시인처럼 도시문화에 익숙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밀림 속에서 흙속에 묻힌 뿌리 고구마를 캐 먹는 게 더 편하다고 말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부인이 이런 지경이니 그분이 얼마나 한국음식을 먹고 싶었겠는가! 그래서 그분은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한국음식 좀 얻어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항상 설레어 있다. 그 분은 매번 식사 때만 되면 부엌에 들어와 “권사님! 권사님!”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요리를 부탁하였다. 원주민 부인에게 제대로 음식을 얻어먹지 못한 그 분이 김치가 먹고 싶을 때는 한국에서 오는 분들에게 고춧가루를 가져오라고 부탁하여 시장에서 배차이(배추)를 사다가 숭숭 썰고 손수 버무려 배추김치를 담가 냉장고에 재여 놓고 몇 주씩 먹는다. 선교지에서 먹어서 그런지 그분이 대충 만든 김치이지만 한국에서보다도 더 맛있는 것 같다. 로하스 시장에 바기오로부터 배추가 반입되어 다행이었다.

 

어느 날, 우리 일행 중 모든 여자분들과 로이다 사모가 외출 중이었고, 가정부는 아이를 안고 있고, 아무도 저녁 할 사람이 없어 내가 나서서 음식을 만들었다. 아침에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둔 생선을 꺼내 튀기고, 큰 국 냄비에 물을 잔뜩 붓고, 꽃게 한 마리가 마침 있어 그것을 집어넣고 된장을 풀어 국처럼 싱겁게 끓였다. 된장에 넣을 야채가 없어 그냥 그렇게만 끓였는데도 꽃게 된장국 맛이 제법이다. 외국에 나가면 된장 냄새만 나도 밥맛이 절로난다. 그날 저녁 열 명의 식구들이 냄비 밑바닥까지 긁으며 맛있게 저녁을 해결하였다. 선교현장에 오면 이처럼 배가 고프면 각자 해결해야 되는 때도 많다. 차려줄때 기다렸다간 자기만 곯아떨어진다. 권위와 품위 따질 여지가 없다.

 

 

 

 

권위자의 표상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권위는 자신의 품위유지를 하기 위하여 좋은 집에 살든가, 좋은 옷을 입든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그런 외면적인 모습이 아니다.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갖지 않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같은 인간 내면의 진지함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권위는 내가 주장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남이 세워주는 것이다. 낮은 곳에 임하며, 늘 헐벗고 병들고 가난한 무리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섬김의 모습은 우리가 존경하고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진정한 권위자의 표상(表象)이 아니겠는가.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자 주님은 힘든 일하고 돌아오는 제자들을 위하여 손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셨다. 세상적인 권위나 위엄으로 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긍휼과 자비로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당신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돌보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요21:12-14)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권위는 섬김에서 나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지고하신 신(神)께서 성육(成肉)하심으로 예수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조금도 지엄하신 신의 모습으로 사시지 않았다. 자상하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며 사셨다. 신의 위엄보다는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박하고 자상하신 한 인간(人間)의 모습으로 사셨다. 그런 겸손한 모습이 진정한 성자의 모습이었고, 구세주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의 모습이었다.

 

집단성 권위주의 증후군은 목회자들에게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들 에게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증세이며, 어떤 면에서는 평신도들에게서 더 강하게 일어나 목회자를 그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다. 순진하고 착한 성도들을 잘못된 목사가 버려 놓는 경우가 있듯이, 선한마음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목회자를 교인들이 부추겨 사치스러운 목회자로 변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문제는 상호 연관되어있다. 어느 한쪽만 잘못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권하며 목회자를 유혹한다 하더라도, 진정 주님 가신 길을 따르고자 하는 목회자라면, 우리 주님이 사신 것처럼 모든 세상유혹을 물리치고 초연(超然)하게 검소하고 청빈한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청빈낙도(淸貧樂道)의 삶을 살아야 될 텐데, 가끔 세인들과 다를 바 없이 부와 명예에 관심을 두게 되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부끄러울 때가 많다. 위에 열거한 권위주의적 목회자의 모습이 나의 잠재성에도 도사리고 있고, 나에게도 그런 기회 주어졌다면, 그분들과 똑 같은 모습이 발생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겉으론 의로운 척 남을 비판하지만, 속마음은 그분들보다도 더 엉큼한 내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내가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지!

세상 사람들이 목회자를 성직자라 호칭하며 존경하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호화스럽게 잘사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다르게 검소하고 겸손하며 그리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씩씩하고 정직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 때문이다. 부활주일을 보내며 내 마음속의 세상욕심을 향한 엉큼한 생각들을 모두 십자가에 매달고, 내 영이 다시 새롭게 부활하여 남은 인생 주님처럼 살아보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태복음 8장 20절)